울산농약사건에 해당하는 글 1

김영세(1949)울산살충제요구르트 아들살인사건

올인부동산|2022. 2. 17.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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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훈

1. 요구르트에 농약을 넣는 수법은 빨대형 요구르트보다, 우유팩형의 경우 증거가 남지 않아 완전범죄에 유리하다. 경찰은 주사바늘을 찾는 우유팩을 벌려서 주입하고 다시 접으면 되기 때문에 증거가 남지 않는다. 물론 마셔보라고 본인이 개봉해야하는 직접실행성은 필요하다.

2. #포스파미돈 은 살충제다.

3. 공개수배해도 못찾는 범죄자가 많다. 기소중지로 머물러 있게 된다.

독성이 강력하다.

4. 2000년 8월이전 발생한 살인사건은 공소시효가 15년이다.


5. 도박하는 남자를 만나지 않는다. 보험사기뽕 맞은 인간은 뽕맛을 못잊는다.

6. 보험사기나, 보상사기를 벌일경우 보상을 첫판부터 과하게 요구하지 말것.(의심받음), 이 사건은 김영세가 나름대로 철저하게 준비하였으나, 살해후 사후대처가 매우 미흡하여 발각위기에 처하자 도주한 사건이다. 아들의 사망에 슬퍼하지 않거나(*주. 대부분의 경우 오히려 과잉되게 슬퍼하거나, 주변 온사람이 인정할정도로 슬퍼하는 연기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병문안시 옷차림을 제대로 신경을 쓰지 않거나, 사건후 실언으로 완벽범죄가 그르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7. 직접증거 없이 #진술기법 으로 기소할 수 있다. 기소는 할 수 있다. 결론은 알수 없다.

#제초제 는 빨대를 꽂아 먹는게 아니고, 우유팩을 개봉해서 마시는 방식이었다.


1998년 7월 19일 울산광역시에서 당시 12세(당시 초등학생6년) 인 김용민 군이 고독성 진드기 살충제 포스파미돈이 다량 함유된 요구르트를 먹고 7월 22일 새벽 사망한 사건이다. 아버지이름은 김영세(1949)고 사망한 아들이름은 김용민(1986)이다.

장례식 당일 새벽에 친부인 김영세가 도주하여 사건이 미궁에 빠진 미제사건이다.

사건의 경과로 보아 김용민 군의 아버지 김영세(당시 49세)(1949)가 유력한 용의자로 기소되었다.

친모가 인터뷰를 한 것으로 보아, 편부가정은 아닌것으로 보인다.

 


1998년 10월 14일자 공개수배 사건 25시에서 용의자 김영세가 수배되었으나 소재가 파악되지 못한 상태다.

 

1998년 7월 19일 오후 5시 10분, 멀리 뱃일을 떠났다가 1년 만에 돌아온 김영세는, 햄버거를 먹고 싶다는 아들 용민이를 위해 울산광역시 남구 삼산동에 위치한 어느 백화점으로 향한다.

용민이는 6살 때 교통사고로 다리를 절뚝거리게 되어 거동이 불편했는데도 불구하고, 부자(父子)는 2km라는 꽤 먼 거리를 걸어 백화점에 도착했다. (주. 일반 마트보다 백화점이 보상금액이 크다. 백화점은 대기업이 모회사기 때문으로 거액을 노린것을 보인다.)

부자는 음료수 코너에서 딸기맛 요구르트 3개를 사서 스낵 코너로 향한다. (주. 빨대를 꽂아서 빨아먹는 요구르트가 아니라, 팩에 들어있는 요구르트로 양쪽으로 벌려 마시는 형식이다. 당연히 이래야 농약을 넣기 쉬웠을 것이다. )


부자가 집을 나선 지 50분이 지난 오후 6시에 그곳에서 샌드위치를 구매한 뒤 45미터를 맞은편 샌드위치 가게까지 이동하였다. (주. 이 이동하는 거리에는 비추는 cctv가 존재하지 않은 사각지대였다. 경찰은 이 이동중간에 살충제를 주입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샌드위치와 요구르트를 먹던 김 군은, 한 모금 마신 뒤 "요구르트의 맛이 이상하다"며 이상 증세를 보이고 먹은 걸 전부 다 게워내더니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말았다.

김 군은 이를 확인한 식품관 직원이 119에 신고해 즉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55시간 뒤인 1998년 7월 22일 0시 55분에 사망했다.


아들과 계속 같이 다녔다고 하였으나, 혼자 마트안을 배회하고 있는 영세오빠(1949)

하루전 해당 백화점에 방문하여 사전답사를 하였다.


판매되는 요구르트에 독극물을 주입하여 불특정 다수를 노린 범행일 가능성이 제기되었기 때문에, 이 사건 직후 울산광역시는 어디서 다시 나올지 모를 독극물 요구르트에 대한 공포에 떨어야 했다.

 

그러나 수사 결과 우유팩에 바늘 자국 등 외부에서 주입된 흔적을 찾을 수 없었고, 요구르트 제조 과정상 요구르트에 다른 이물질을 넣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결국 요구르트팩은 사람이 직접 개봉해서 주입후, 아들 김용민에게 건내주었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2번째사진 #공개수배김영세 영세는 23년넘게 도망다니고 있다. 죽으면 좋은데 이런 얘들은 잘 죽지도 않는다.


이에 경찰은 요구르트를 건낸 아버지 김영세를 의심하고 조사하려 하였으나 이미 김영세는 참고인 조사 후 이미 잠적한 뒤였다.

이후 김영세의 행적은, 시골 아주 깊숙한 곳에 은둔해 살면서 가끔 도인 행세하며 시골마을 시장을 왔다 갔다 한다는 제보가 있을뿐 확인된 바가 없다.


 

1998년 장례식날 새벽에 도주하고 끝내 잡지 못하고 있다. 23년동안 도망다니고 있다.


< 도박자금마련목적 살인 의혹>


사건 당시부터 김영세의 행적은 의문을 남겼다. "아들의 요청에 따라 요구르트를 구매하였다"고 진술하였으나 CCTV 확인 결과 본인이 요구르트를 구매하였다는 점이다.

사건 전에 수 차례 동일 백화점 식품관에서 같은 요구르트를 구입한 점도 확인되었다.

살충제가 들어있다는 것이 밝혀진 것은 사건 8일 뒤인 1998년 7월 27일이었는데도 "요구르트에 독극물이 들었다"고 백화점에 항의한 점 등으로 이미 요구르트내 독극물이 들어있음을 전제하고 사망 원인 주장을 한것이라는 의혹이다.



1년 동안 뱃일을 떠난 김영세가 7월 16일에 돌아왔고, 이로부터 3일 뒤에 용민이는 백화점에 따라갔다가 봉변을 당했다.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 떠도는 소문 중에 "용민이가 6살 때 교통사고를 당하고 나서 김영세가 보험금을 수령한 뒤, 용민이의 다리를 고쳐주지 않고 그 돈을 김영세가 도박판에서 전부 탕진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사망한 김용민의 아버지 김영세는 '돈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냐'는 경찰의 물음에 '1년 동안 뱃일을 하면서 모은 돈이 꽤 된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이 당시 김영세가 선원으로 있었던 배의 선장직을 맡았던 사람에게 전화 연결을 통해 사실 확인을 해 보니, 김영세는 단 '8일' 동안만 선원으로 있었고, 이후에는 뱃일이 적성에 안 맞는다며 관뒀다고 한다.


당시 백화점 판매원은 "아이가 중환자실에서 죽어가는데도 백화점에 항의만 하고 있는 것이 이상했으며, 심지어는 웃으면서 병원을 나오는 김영세를 보며 무척 수상했다"고 증언했다

. 그리고 당시 용민이는 무척이나 남루한 차림으로 속옷마저 착용하지 않은 상태였는데, 김영세는 그런 용민이와는 확연히 대조될 정도로 백바지, 하얀 구두를 신고 말끔하게 입고 있어서, 그 점도 보통 부자들과는 달라보였다고 증언했다.


 

백화점 직원들은 일반적으로 식품을 먹고 탈이 나면 식중독을 먼저 의심하는데, 사건 직후부터 독극물타령을 하는 김영세를 보고 수상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독극물 결과는 사건발생일로부터 8일후에 결과가 나왔다.)

김영세는 강한 식초냄새가 났기 때문이라고 증언했으나, '이상한 냄새가 난다'며 맡아보라고 했던 샌드위치 매장 직원은 특별히 이상한 냄새를 맡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해당 살충제는 포스파미돈이라는 살충제인데, 살충제나 농약을 판매하는 사람들이 말하기로는 포스파미돈은 냄새가 약해서 향이 나는 식품에 섞으면 알수가 없다고 한다.

게다가 약간 단맛이 나기 때문에 업계에서는 요구르트에 섞었다는 뉴스를 보고는 농약을 잘 아는 놈이 범인이라고 수근댔다고 한다.

 

심지어 김영세는 용민 군이 죽었는데도 큰아들(용민 군의 형)에게 크레도스 차량을 사 주겠다, 백화점 측에서 해결을 않는다면 아들의 시신을 리어카에 싣고 시위하겠다 등의 적반하장적 태도를 보였다.


#진술분석기법 이 이 사건에 사용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기소하였다고 한다.

직접적인 물증은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김영세검거 가 된다 하더라도 실제 유죄가 나올지는 미지수다.

<당시 진술중 유의미한 부분>

영세오빠는 23년동안 잡히지 않고 있다. 

요구르트 3개 1380원을 지불하고 다른 물건은 전혀 사지 않고 지하식품매장으로 같이 걸어가면서 햄버거를 사주고자 햄버거를 판매하는 코너 진열대에 앉아 아주머니 두 분이 있는 것을 보고...

 

- 아버지 김 씨의 3차 조서 내용.

 

 

 

김씨의 주장에 따르면 사건이 발생하기 전 부터 아들하고 계속 같이 있어야 돼요. 굳이 여기서 ‘같이 걸어간다’ 라고 하는 것은 드디어 같이 있는 걸 의식했기 때문에 그 전에는 같이 있지 않았다는 걸 우리가 추론해 볼 수 있는 겁니다.

 

- 진술분석 담당 검사


당시 사건이 일어난 뒤 한동안 사회면을 떠들썩하게 했으나 김영세가 잡히지 않아 기억속에서 사라졌다.

김영세(1949)가 행방불명된 후 2000년 공소 중지되었다.

그러다가 2013년 6월 공소시효 만료를 앞둔 재조사에서 제조 과정에서 독극물이 들어갔을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재차 확인하고, 당시 김영세의 진술에 대한 첨단 프로파일링 결과 김영세의 진술의 신빙성이 희박하다는 것이 판명되어, 공소시효를 하루 앞둔 2013년 7월 17일 재차 기소되어 공소시효가 15년 더 연장되었다.

이 사건은 공소시효만 연장됐기 때문에 2028년 7월에 공소시효가 예정대로 만료된다. 공소시효가 없어진 사건은 2000년 8월 이후 벌어진 살인사건들뿐이다.

(*주. 김영세(1949)는 2028년까지만 안잡히면 완벽히 자유의 몸이 된다.)

미리 백화점 식품코너를 수차례 답사했다. 머리속에 시나리오가 잡혀있다고 할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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