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환(1982)전북대병원로비여중생살인사건
교훈
1. 돈을 많이 번다. 고2이하까지는 알바를 시키지 않도록 부모가 지원해야 한다.
2. 경찰을 믿지 않는다.경찰을 믿고 방만하게 있었다가는 반드시 피살되거나 사망한다. 반드시다.
3. 경찰에게 신변보호를 요청할때는 녹취를 한다. (횟수전부다), 그냥 가만히 있지 말고 유튜브로 올린다. 커뮤니티에 녹취를 올린다. 공론화시키지 않으면 경찰은 움직이지 않으며, 공론화되지 않는 그 시간동안 피살된다.
4. 스토킹당하거나, 신변보호 위협을 느낄때는 먼저 살해할 준비를 한다. 절대 광신적으로 스토킹하는 놈을 살해하는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이 단계에 이르면 둘중에 한명은 반드시 죽어야 끝나는 상황이므로, 스토커는 정신질환자로 치료가 불가능하며, 생명절단으로 종식된다.
그러므로 마음을 가다듬고 준비하여야 한다. 이러한 상황을 초래한 책임은 본인에게 있는것이다.
결국 상황종식을 위해서는 살해당하지말고 먼저 살해하라. 스토킹 피해자가 스토킹범을 살해하는것은 (1)재범가능성이 제로이고, (2)광신적 스토커를 고통받다 살해한 것이므로 참작이 되어 처벌도 경하다. (3) 목숨을 잃은 것보다 먼저 살해하는 것이 올바른 대처법이다. 먼저 살해하지 않아 발생한 비극은 이루 헤아릴수 없다.
본인 뿐만아니라 일가족까지 살해된다. 준비하라. 때가 가까왔느니라.
5. 수많은 스토킹 피살사건이 있음에도 피해자는 먼저 스토킹범을 죽일생각자체를 못한다. 스토킹당한 피해자는 죽고나서 가족은 항상 분노하고 슬퍼한다. 여러사례를 보고도 준비하지 않고, 반복피해를 당하면, 멍청한것이고 무기력한 것이다.
죽기전에 살해하라. 살인범을 먼저 살해하여 목숨을 지키는 것을 두려워하면 안된다. 살인범의 인권보다 피해자의 생명과 인권이 우선이다.
6. 18세이하 미성년여성, 청소년을 만나는 남자는 전부 섹스를 목적으로 한것이지 다른이유는 전혀 없다. 미성년여자, 청소년여중딩,여고딩을 사랑해서 만난다는 남자가 있다면 조용히 가서 입을 찢어놓는다.
7. 케이경찰의 대응은 피의자,범죄자 인권우선주의에 입각해 있는 인권국가이므로 항상 대응이 똑같다. 절대 신뢰하면 안된다.
2014년 2월 27일,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금암동에서 조폭 출신인 전과40범 30대 남성 박정환(당시 32세)이 성폭행형사사건 합의를 거절하자 흉기로 여중생인 송수아(당시 15세)를 전북대병원로비에서 복부와 목을찔러 살해하고 자신은 경찰에 쫒기자 인근 아파트 19층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사건이다.
2014년 2월 8일 어려운 형편에 아르바이트를 구하던 송 양이 지인의 소개로 처음 박 씨와 조우한다. 박 씨는 보도방을 운영 중이었으며, 송 양에게 카운터나 청소일이 아닌 보도근무를 요구했고, 송 양은 거부하며 박씨를 피했다.
억울한 딸의 죽음을 알리겠다고 현수막을 내거는 아버지, 조폭보다 경찰의 무사안일,복지부동에 대한 분노가 담겨있다
#전북대병원로비 에 게시된 송수아살인사건전말
송수아(2000) 아버지가 밝힌 사건개요
2014년 2월 말 북대병원에서 한부모가정으로 곱게 자란 외동딸(당시15세)이
32세의 전과 40범에게 식칼에 수차례 찔려 고통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2월 26일 새벽0시 40분경에 112에 보도방을 운영하던 박 정환을 아파트 밑에서
빨리 내려오라고 수차례 추긍을 하던차에 용진 지구대 경찰 두명이 우리집에 들어와
사건내용을 진술 하던 중 박 정환은 당당하게 허락하지도 않은 한 밤중에
우리집에 들어와
"나도 할 얘기가 있으니 들어 달라! 는 등의 소란을 피우자
경찰은 신원확인도, 신변확보 도 전혀 하지않고 밖으로 내보냈습니다.
저희 부녀에게 진술만을 받고 북대병원내 원스톱지원센터로 대리고 갔습니다.
추가조서를 작성 하고 나니 새벽 5시 반경이 되었고 아이가 아픈 상태라 조사 내내 힘들어 했고 무서워 죽겠으니 신변보호를 해달라고 했으나 경찰관 왈 " 지금은 함부로 사람 못잡아요" 라더군요
집으로 돌아 오려는데 수아가 우리집은 박 정환이 알고 있으니 무섭다며 친구 집에 가서 자겠다하여 경찰관에게 친구 집이 가까우니 가는 길에 내려 주고 가달라고 부탁 했더니 그럴 수 없다며 택시비 없어요? 라고 묻더군요
수아가 자기가 차비 있다며 택시를 타고 먼저 출발 했고 잠시 후 저는 경찰차를 타고 집으로 가면서 잘 들어갔냐고 통화를 하고 집에 도착해서 잠시 자고 출근을 해서 일을 마치고 원스톱지원센터에 있다고 하길래 달려가보니,
아침에 친구집에 가서 쉬겠다던 아이가 선배 언니를 북대 구정문에서 만나기 위해 갔다가 또 박정환 일당에게 납치되어 범인의 집에 감금 되어 있다가 범인이 잠든 틈을 타서 극적으로 탈출을 했다는 겁니다.
납치건으로 또 진술서를 작성하고 저녁9시 경에 귀가해서 자고 27일사건 당일오후 2시경부터 3차례 조서를 마치고 서류에 지장(도장)을 수 없이 찍고서야 병실에
입원(당시 골반염)을 시켰습니다.
마침 수아 친구가 병문안을 와서 친구에게 부탁하고 집으로 입원 물품을 챙기러 봉동 집에 와서 얼마 지나지 않아수아 절친이
" 아빠 어떡해 해요" 라며 겁에 질린 목소리의 전화를 받고 정신없이
응급실에 도착해 보니 수술을 받았지만 과다 출혈로 비참하게 죽고 말았읍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1층 로비에서 목과 배에 식칼로 수차례 찔렸다 하더군요.
이러한 과정중에 무서워 죽곘다" " 조직폭력배에 전과도 많다던데 신변보호 좀 해주세요" 를 최소 5회 이상 요구를 했지만 보호해 주겠다는 말은 한마디도 듣지 못했읍니다.
입원 직전에 3차 진술때 덕진 경찰서 강력3팀 황 지연 형사님께 부탁을 했더니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어떡게 와요! 못와요 걱정마세요 지금 열심히 수사 하고 있으니 괜찮을 거에요" 라고 하더군요
만일 황 지연 형사의 자녀가 이런 상황 이였다면 그렇게 미온적으로 보호 했을까요?
-----------인 적 재 해 입 니 다 ------------
첫째 초기에 범인을 맞딱드렸지만 신원 확인도 신변 보호를 하지 않았다는 점
둘째 왜 피해자만 조서를 작성 해야 했을까요?
세째 납치됐다가 탈출 해서 잠 자고 있었던 범인을 체포 하지 못했을까요?
넸쩨 왜 지명 수배 중이며 전과40범을 적극적으로 위치 파악을 하지 않았을까요?
다섯째 수사권한으로 범인 휴대전화 위치 추적을 하지 않았을까요?
--------15살 꿈도 많고 착한 우리 딸의 원한을 풀어주세요-------
====우리의 안전을 책임 지고 일하는 경찰관들을 이래도 믿을 수 있나요?======
홀아버지 밑에서 자란 가난한 여중생이었던 수아의 집은 경제적으로 어려웠다. 아버지는 1997년대 후반 IMF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하던 사업이 실패했다. 이로 인해 아내와 이혼했고, 외동딸인 수아를 홀로 키웠다.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수아는 아르바이트를 구하러 나섰다. 그러던 중 지인의 소개로 박 씨를 만나게 된다.
박 씨는 노래방에 도우미를 제공하는 일명 ‘보도방’을 운영하고 있었다. 아버지에 따르면 살인범 박정환(1982)은 전과 40범에 이른다고 했다. 박 씨의 실체를 알아챈 수아는 그를 멀리하려고 피했다.
그러나 박 씨는 송 양에게 호감을 갖고 열악한 처지에 있던 여중생 송수아를 강간했다.
강간이후 이 사실을 알리면 죽이겠다며 협박한 뒤 자신의 집으로 송 양을 납치 및 감금하여 또다시 성폭행했다. 강제적으로 감금되다시피하여 감시당하며 동거를 강요당하였다.
미성년자인 수아와 무려 17살 차이인 박 씨와의 동거가 정상적인 관계라고 볼 수 없다. 강압에 의한 감금상태였다.
약 2주간 박정환(1982)의 감시하에 감금하다시피 동거하던 수아는 다툰 후 아버지아파트로 돌아갔다.
그때부터 박 씨의 집요한 괴롭힘이 시작된다. 그는 수아에게 “다시 만나 달라”고 했지만, 수아가 거절하자 협박을 일삼았다. 수아에 대한 집착은 시간이 지날수록 강도가 세졌다. (*주. 32세가 15세에게 만남을 강요하는 것은 섹스이외에 다른 이유는 없다. )
2014년 2월 26일 오전 0시 40분쯤에는 전주시 덕진구 봉동에 있는 아파트 아래까지 찾아왔다.
박정환(1982)은 송수아에게 “빨리 내려오라”며 행패를 부렸고, 여기에 위협을 느낀 송 씨 부녀는 경찰의 도움을 받고자 112에 신고했다.
부녀는 경찰에 신고하고 박정환을 제지하고 체포할것으로 신뢰하였으나, 송수아(2000)가 중학생 신분이었음에도 안일하게 대응하고 말았다. 결정적으로 사전에 비극적 사건을 막지못한 경찰의 어이없는 행태가 현장에서 발생한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의 태도에 대해서 송수아의 아버지는 극도의 분노를 드러냈다.
송수아 아버지는 “신고를 받고 지구대 경찰관 2명이 찾아왔고, 신고내용을 진술하던 중에 박정환이 집 안으로 불쑥 들어왔다”
“한밤중, 그것도 위협을 느껴 신고를 당한 가해자가 경찰관이 출동해 있는데도 피해자 집 안으로 무단 침입했다”고 말했다.
“(박정환이) 한밤중에 허락도 받지 않고 우리 집에 들어와 ‘나도 할 얘기가 있으니 들어 달라’고 소란을 피웠으나 경찰은 신원 확인도, 신병 확보도 하지 않고 밖으로 내 보냈다”고 말했다.
경찰은 박 씨의 신원을 확인한 후 현행범으로 체포하거나 임의 동행하는 형식으로 신병을 확보했어야 하는데도, 그런 후속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경찰은 전북대병원에 있는 원스톱지원센터로 데려가 조사를 하였고, 당일 오전 5시 30분 정도가 되어 끝이 났다.
송수아(2000)는 신변을 보호해 달라고 요구하였으나 경찰은 이를 무시하고 지금은 함부로 사람을 못 잡는다며 신변 보호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전북원스톱지원센터에서 1차진술을 하였다.
그러나 송수아의 납치를 노리던 박정환(1982)은 송수아가 진술을 마치고 귀가하는 동선을 파악한 후 송 양을 2차 납치하여 전주시 우아동에 위치한 아중저수지로 끌고 가 각목으로 폭행하며 협박한 후 감금하고, 납치후 긴장이 풀렸는지 차에서 잠들었다.
뒤에서 낚아채듯 납치하는 전과40범 박정환(1982)
#거꾸로 배를 하늘로 향한채 들리듯이 끌려가는 송수아(2000)
대한민국에 대낮에 납치되어도 케이 경찰은 그다지 큰사건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이 납치사건이후에 이루어진 신변보호 요청에도 반응하지 않는다. 대단한 사건임에는 틀림없다.
송수아는 박정환(1982)이 차량에서 잠든 틈을 타 아중저수지에서 가까스로 탈출하는 데 성공하였다. 송 양은 납치 건으로 2014년 2월 26일 경찰서에서 다시 진술서를 작성하였으며, 밤 9시쯤 귀가하였다.
2014년 2월 27일 사건 당일 전북대병원
송수아(2000)는 오후 2시경, 세 번째 조사를 마치고 조서에 도장을 찍고 나서는 당시 앓고 있던 골반염으로 인해 전북대병원에 입원하였다.
병문안으로 송 양의 친구가 왔다. 박정환(1982)은 경찰의 추적을 받고 있었지만 소재를 파악하지 못하고 헤매고 있었다.
박정환(1982)은 납치와 강간에 대한 자신의 형사사건의 합의를 위해 2014년 2월 26일 이후 계속해서 송수아(2000)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는 것이다.
송수아(2000)가 거절하자, 박정환(1982)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온 송수아의 병실 사진 등을 통해 송수아가 전북대 병원에 입원한 사실을 확인한다. (*주. 따라서 SNS에 함부로 자신의 사진이나, 개인정보가 담긴 사진을 올리면 안된다. )
박정환이 송수아가 입원한 병원을 추적한 끝에 입원한 전북대병원을 찾아가 자신의 전과때문에 중하게 처벌될 것을 우려되어 합의를 종용하였으나, 거절한 송수아를 살해하기로 결심하고 식칼도 준비하였다.
<전북대병원로비 살해당시 상황>
병원을 찾아간 박 씨는 로비에서 친구와 대화하는 송 양을 발견하여 대화를 시도하였다.
송 양은 대화를 거부하였으며 박 씨는 미리 준비한 식칼로 송 양의 목과 복부를 수차례 찔렀다.
병원로비에서 발생한 어이없는 살인사건이었던것이다.
수차례 칼에 찔려 로비바닥에 다량의 피를 쏟아 위독한 상태로 바로 응급실에 긴급 이송되었다.
여러 응급처치를 진행하고 심장충격기로 소생 시도를 하였지만 결국 과다출혈로 사망하였다.
송수아(2000)를 살해한 후 박 씨는 병원을 빠져와 승용차를 타고 달아나다 3km 떨어진 도로에서 다른 차량을 들이받은 뒤 근처 아파트로 도주했다.
경찰의 포위망이 좁혀오자 인근 아파트 19층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피의자가 사망한 상태였으므로 경찰은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를 종결했다.
자칫 박정환(1982) 사망하지 않고, 체포되었다면 경찰이 받았을 엄청난 여론비판을 깔끔하게 박정환살해범이 안고 종결을 지어 준것이다.
<케이경찰의 대응은 언제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다>
(1) 최초 송양 아파트에 경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들이닥치는 현장에 경찰이 있었음에도 전혀 제지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2) 더군다나 침입자에 대해 경찰은 신원 확인 및 신변 확보도 하지 않고 밖으로 내 보냈다고 송 양의 아버지가 말했다.
(3)여중생이 요청하는데도 신변보호 거절
박 씨를 주거침입 현행범으로 체포하지 않은 것에 이어, 송 씨 부녀의 신변보호 요청을 거절했다는 논란이 있다.
피해자 송 양은 박정환이 무섭다며 신변을 보호해 달라고 요청을 했으나 경찰은 지금은 함부로 사람을 못 잡는다고 얘기를 했다고 송 양의 아버지가 이야기를 했다.
(4) 2차납치감금을 당했음에도 방만한 대응
송수아(2000)는 박정환(1982)에게 2차 납치를 당하여 둔기로 폭행을 당한 뒤, 차량 내에 감금 또한 당하여 또 한 번 경찰서에 가서 5차례 이상 ‘무서워 죽겠다. 박정환이 조직폭력배이니 신변을 보호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보호해 주겠다는 말은 한마디도 듣지 못했다.
또 입원 직전에도 강력팀 형사에게 부탁했지만 거절당했다는 것이다. 결국 거듭된 신변보호 요청에도 송 양은 경찰에게 신변보호를 받지 못하고 변을 당한것이다.
< 경찰 공식입장 :우리 잘못한것 없다>
이에 대해 덕진경찰서 측은 할 수 있는 조치를 다 했다고 대처 미흡에 대해 부인하였다.
하지만 여론은 싸늘한 반응. 거기다 피의자의 전과가 무려 40범이라는 점에서 "전과 40범이 어찌 사회에 돌아다니냐."며 경찰을 비판하였고, 해당 경찰관과 경찰서장을 파면해야 된다는 목소리가 나왔으나 이사건을 처리한 경찰서와 경찰관들은 여전히 잘먹고 잘살고 있다.
죽은 사람만 억울한 케이코리아
송수아(2000)가족은 수아가 살해당하면서 풍비박산이 나고 말았다. 손녀의 죽음을 맞닥뜨린 할아버지는 그 충격으로 얼마 후 사망했다.
송수아(2000)의 아버지는 공포와 외로움, 슬픔과 분노로 심한 트라우마로 인해 문 밖을 한 발자국도 나갈 수가 없었고, 오직 죽고만 싶었다고 한다.
1년 반을 이렇게 보낸 송 씨는 사랑스런 딸의 원한을 풀 수 있는 방법을 찾았고 결국 인터넷을 통한 여론화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주. 늦은감이 없지 않다) 그때부터 인터넷과 SNS 등을 통해 수아의 억울한 죽음을 세상에 알렸다. 정부12개 부처에 민원도 제기했다.(그러나 케이코리아 답게 콧방귀도 안뀌고 달라진것 아무것도 없었다는 슬픈이야기다.)
결론
경찰을 믿지 말고 스스로를 지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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