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사형수집행홍순영(1967)곽재은유괴살인사건
유튜브:부동산뉴스비평
교훈
0. 한재숙,김선자등 홍순영이후 여자 사형수에 대한 사형집행이 있었지만, 최초의 여자사형수 집행은 홍순영이 스타트를 끊어 새역사를 썻다. 보통 공범형식으로 가담하는데, 홍순영은 단독범인데다, 독극물등, 약물을 이용하지 않은 완력을 사용했다. 피해자가 어린이기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을 것이다.
1. 어린이집,유치원에서는 학부모가 데리러 간다고 할때, 해당 부모 또는 친척인지 반드시 확인해야한다. 유괴사건을 저지르고자 마음먹으면 쉽게 유괴할 수 있는 방법으로 보인다. 스쿨폴리스있고, 학교지킴이 할아버지 있어봤자 필요없다. 방과후 교사는 빨리 얘 한명이라도 보내버리는게 속편하므로, 데리러 오는 사람이 누구인지 신경안쓴다.
그것은 1990년 홍순영의 곽재은유괴납치살인사건도 마찬가지고, 2021년 코로나시대 유치원도 마찬가지다.
2. 1980년 후반은 민주화물결이 만개한 시점이라 정치외교학과가 최고의 학과였다. 법학과가 다음이었고, 실용사회과학인 경영학과는 당시에는 잼뱅이었다.
3. 숙대출신이라고 시신을 숙대음대 옥상에 살인해 방치했다. #곽재은양을 살해하는 순간까지 숙대생이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4년동안 다녔으면 어느정도 심리적 안정을 얻을 수 있었던 범행장소라 할 수 있겠다.
4. 리플리증후군 어쩌구 하는데 정신과, 심리학과 교수들이 그냥 막 가져다 붙이는것 같다. 리플리 증후군이 아니라, 그냥 사랑하는 남자 차지하려고 광기에 찬 한 여자일 뿐이다. 해당 결혼상대였던 남자가 또다른 여자에게 관심만 없었어도 이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 다른여자와의 경쟁심때문에 벌어진, 여자대 여자의 전쟁에서 패배한 것이다.
5. 가짜 대학생 행세는 1990년대도 가능하고, 2020년대도 가능하다. 당시의 학적부가 전산화가 안되서 그런다고 하는데, 전산화하고는 아무상관이 없다.
마음만 먹으면 2020년에도 가짜 대학생 흉내를 낼 수 있다.
6. 홍순영은 계속 사형시켜달라고 했는데, 이는 자존심의 몰락이 얼마나 큰 지 알수 있다.
달리는 지하철에 몸을 던져 자살을 감행할 정도면 이미 자존심의 몰락이 죽음과 바꿔도 될 만큼 상심이 큰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지하철이 급정거 해서 경미하게 다치는것에 그쳤다고 하는데, 당시 기관사의 응급 상황 대처능력이 뛰어나서 1계급 진급,특진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7. 이사건을 설명하면서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고 또 거짓말을 낳고... 식으로 설명하며 리플리 증후군을 가져다 붙이는데, 이건 증후군이라기 보다는 흔히 주변에서 볼수 있는 인간 군상이다. 특별할 것도 아니다.
당시 학력중시 풍조와 자녀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보니, 심리적 부담감때문에 거짓말을 한 것이지, 홍순영이 정신병자는 아닌것이다.
8. 2000년대에는 아동 유괴사건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은 독특한 점이다. 만약 발생시 당연히 비난강도가 큰 범죄가 되겠지만, 설사 아동유괴 살인해도 현재 사법부는 사형을 선고하지 않는다.
당시 80~90년대는 범죄와의 전쟁을 진행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강력범죄에 극형으로 다스려지던 시기라, 홍순영에게는 불운한 시기에 태어났다 사라졌다고 할 수 있다. 현행 사법부는 법의 약화가 극에 달해 있어 범죄자들의 천국이 되어 있다.
9. 부모들은 자녀에게 너무 과도한 기대를 하지 말고, 자녀들은 자신의 한계에 부합할 정도로 노력하고 그 결과에 승복해야한다. 가끔 성공자들이 "한계를 극복했다" 어쩌구 성공담을 말하고는 하는데, 극히 일부의 경우이다.
미쳐버리는 것보다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행복을 구하는것이 바람직하다.
10. 자녀를 오냐오냐 하면서 키우면 아이가 이상해 질 수 있다.
11. 1990년에 범죄가 발생하고 1991년이 가기전인 12월에 사형이 집행되었다.
1990년 6월 25일에 일어난 아동 유괴 사건. 당시 23세의 젊은 여성이 범인이었던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1990년, 서울특별시 송파구 올림픽선수촌아파트에서 살던 곽재은 양(1984년생, 당시 6살)은 단지 내의 유치원을 다니고 있었다. 아파트 단지 내의 유치원이었기 때문에 곽재은 양은 혼자서 등하원을 했다.
그런데 1990년 6월 25일, 집에 돌아와야 할 12시가 되어도 곽재은 양은 돌아오지 않았다. 걱정이 된 엄마는 유치원까지 갔지만, 교사는 "어머니가 전화를 해서 30분 전에 보내달라고 하지 않으셨어요?"라고 되물었다. 어머니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계속 수소문하다가 오후 5시에 경찰에 유괴 신고를 했다.
범인 홍순영은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으나 허영심이 강한 성격으로, 윤리의식이 희박해 대학입시 실패 후에 우연히 줍게 된 학생증을 기화로, 가짜 숙명여대생 행세를 했다.
위조 학생증까지 가지고 다녔고, 집에는 가짜 합격증과 등록금 고지서를 내놓았다.
장장 4년 내내 태연히 도강을 하며 모든 수업을 다 듣고, 숙명여대 MT 등 행사에도 빠짐없이 참여해 왔으며 졸업식까지 참석했다.
이로 인해 유괴사건 보도 초반에는 숙명여대생이 범인이라는 오보가 나올 정도였다. 심지어 가짜 졸업 후에는 또 KBS 기자로 취직했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한다.
홍순영은 처음에는 숙명여대생인 척 하고 다니면서 그 해에 다시 대학입시를 치러 숙명여대에 정식으로 입학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학교생활에 바쁘고 자신의 정체가 들킬까봐 모든 상황에 거짓으로 대응하는 데 신경을 쏟느라 공부를 할 시간이 없었다.
또한 주변에서 홍순영이 정말 숙대생인지 의심하는 시선이 강해졌고, 홍순영이 가짜 숙대생이라는 소문이 점점 퍼져 나갔으며, 마지막에는 혼담이 오가고 있던 남자친구에게까지 그 사실이 알려졌다.
모든 것을 거짓으로 살아온 4년이 넘는 세월은 홍순영의 마음을 극단적으로 병들게 했다. 실제로는 고졸 백수였는데 취직을 했으니 집에 월급을 갖다줘야 하는데, 돈 나올 곳은 물론 없었다.(캔디주: 당시에는 월급을 받으면 부모님께 빨간 내복이라도 사드려야 하는 사회적 풍조였나 보다.)
점점 홍순영의 상황과 생활은 악화되었다. 게다가 남자친구와의 결혼이 이런 상황을 끝낼 기회였는데(결혼했으니까 직장을 그만뒀다는 핑계), 남자친구의 부모는 키가 작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결혼을 반대했다.(캔디주: 당시 수사했던 형사의 진술도 그러했다. )
홍순영은 이러한 상황에서 사이가 벌어진 남자친구의 환심을 사기 위해 매수할 돈을 모으려고 범행을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범행 당일에 유치원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유치원의 우산꽂이에 달려 있는 우산에서 곽 양의 이름을 보고 범행대상을 선정할 정도로 대담한 성격이었다.
홍순영은 허위전화로 곽 양을 유치원에서 하교시킨 후, 엄마의 지인으로 속이고 빵과 음료수를 사주며 숙대까지 유인해 전화번호 및 주소를 알아냈다.
그 후, 건물 후미진 곳으로 가서 목을 졸라 잔인하게 살해했다고 한다. 협박전화를 걸었을 때는 이미 곽 양을 살해한 후였다.
1990년 6월 26일 오후 5시에 젊은 여성이 곽 양의 집에 전화를 걸어 "재은이를 데리고 있으니 신고하지 말고 5천만 원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경찰은 이를 추적하여 공중전화에서 발신했음을 밝혀냈다. 이후 10분 뒤에 다시 전화해서 계좌번호와 가짜 이름으로 만든 예금주를 댔다.
곽 양의 어머니는 우선 6월 27일 오전에 500만 원, 다음날 오전에 2,500만 원을 범인이 알려준 조흥은행 계좌에 송금했으며, 경찰은 범인을 잡기 위해 조흥은행 본점 및 서울시내 모든 지점 그리고 전산실에 형사들을 배치했다.
1990년 6월 29일 오후에 드디어 범인이 30만원을 인출한 기록이 포착되었는데, 형사들이 배치된 조흥은행이 아닌 국민은행 본점의 ATM이었다.
이에 형사들에게 비상 경계령이 내려졌고 약 2시간 후 명동 롯데백화점 내부의 조흥은행 출장소 ATM에서 10분간 260만 원을 인출했다.
주변 지점에 배치되었던 형사들이 바로 명동 롯데백화점의 조흥은행 ATM으로 달려갔고, 막 돌아나오던 키가 매우 작은 젊은 여성을 주목한다.
그녀가 범인임을 직감해 추적에 나선 경찰은 마침내 을지로입구역 계단에서 체포했고, 범인은 23세의 홍순영(1967~1991)이었다.
검거된 여성에 대한 수색에서 방금 인출한 현금 2백60만원과 1시간 반 전에 인출한 30만원 등 총 2백90만원의 현금, 조흥은행 통장과 카드 그리고 재은이 부모 앞으로 쓴 협박 편지 한 장이 발견되었다. 여성의 이름은 홍순영, 23세. 1백60cm가 될까 말까 한 자그마한 체구에 앳된 얼굴이었다. 도저히 흉악하고 잔인한 유괴 범죄를 저지를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재은이는 숙명여대 건물 옥상 물탱크 뒷 공간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홍순영은 범행 당일인 6월25일, 범행 대상을 물색하며 올림픽공원 인근 아파트단지를 돌아다니다가 한 유치원을 발견하고, 바깥 우산 통에 꽂혀 있는 우산 중에서 아이 이름이 선명하게 보이며 눈에 띄는 우산을 발견하고는 유치원에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유치원에서는 아이 이름을 대는 여성이 엄마라며 급하기 때문에 유치원으로 바로 출발해서, 가면서 도중에 아이를 만나 데려갈 테니 그냥 바로 귀가시켜달라고 하자 아무 의심 없이 서둘러 아이를 귀가시켰다.
영문도 모르고 유치원을 나선 재은이는 낯선 여성이 이름을 부르며 다가와 손을 잡자 어쩔 줄 모르고 따라나서게 된 것이다. 재은이를 데리고 지하철을 이용해 숙명여대 앞까지 간 홍순영은 카페에 앉아 재은이 부모님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 등을 물어보았다.
필요한 정보를 다 파악한 홍순영은 낯선 곳에 낯선 어른과 함께 있는 것을 두려워한 재은이가 집에 보내달라고 보채자 숙명여대 안으로 들어가 미리 봐둔 옥상으로 올라간 뒤 울며 애원하는 재은이의 목을 손으로 졸라 살해한 후 물탱크 뒤편 벽 사이 공간에 시신을 밀어넣어 숨겼다. 돈을 요구하는 협박 전화는 이미 재은이가 사망한 뒤에 걸었던 것이다.
* 리플리 증후군 환자들은 주변에 수두룩 하다.
형사는 재은이가 어디에 있는지, 공범이 있는지를 물었다.
범인 홍순영은 공범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 바로 돈을 공범에게 가져가지 않으면 아이를 해칠 수 있다고 재촉했다.
형사들은 홍순영의 말을 믿고 1차 접선 장소라는 이화여대 구내에서 2시간여를 기다리다가 다시 2차 접선 장소라는 지하철 서울역으로 이동해 1시간 남짓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
사람이 많은 공공장소에서 공범이 눈치 채지 못하게 하면서 홍순영이 도주하지 못하게 해야 하는 어려운 동행 잠복 상황이었다.
플랫폼으로 청량리행 기차가 들어오고 있는 그 찰나의 순간, 홍순영이 갑자기 선로 위로 몸을 던졌다.
다행히 이를 발견한 기관사가 급정거를 하는 바람에 끔찍한 사고는 피할 수 있었다.
홍순영을 뒤따라 선로 위로 뛰어내린 형사들은 머리에서 피를 흘리는 여자를 끌어올린 뒤 인근 병원으로 후송했다. 홍순영은 뒷머리 부분에 약 5cm의 찰과상만 입었을 뿐 큰 상처 없이 무사했다.
경찰은 병원 침상에 누워 입을 꼭 다문 범인에게 재은이가 있는 곳을 알려달라는 추궁과 호소를 계속했다.
입을 꾹 다문 채 ‘사형시켜달라’는 말만을 반복하던 홍순영은 ‘같은 여자 입장에서 재은이 엄마의 썩어들어가는 마음을 생각해 어디에 있는지만이라도 알려달라’는 거듭된 호소에 결국 입을 열었다.
* 홍순영은 이미 한번 어린이를 유괴한바가 있다고 한다. 다행히 당시에는 사망하지 않고, 어머니에 의해 풀려나서 돌려보낸적이 있었다고 한다.
곽재은 유괴 살인 사건의 범인 홍순영. 체격이 매우 왜소하다. 단, 옆에서 홍순영을 붙잡고 있는 두 여성은 강력계에서 근무하는 형사들로 업무 특성상 일반 여성보다 체격이 건장한 편이다.
재은이가 어디 있는지 추궁했으나 동문서답을 하던 홍순영은, 결국 "숙명여자대학교 한 건물의 물탱크 뒤에 재은이의 시신을 은닉했다"고 자백했다.
0의 부천시 자택에 감금했다가 풀어주었던 일을 벌인 적이 있고, 자신 또한 사형을 원한다고 자기 입으로 밝혀, 사형 판결을 받고 1991년 12월 18일 다른 8명의 사형수와 함께 사형이 집행되었다.
유언은 남기지 않았다고 하는데, 사형집행 직전에 "남길 유언이 있으면 말하라"고 집행관들이 권해도 울면서 고개를 저으며 거부했다고 한다.
범인이 학생 행세를 했던 숙명여자대학교에서는 사건 이후 많은 시간이 지난 시점에서도 이 사건이 꽤 유명하며, 특히 재은 양이 살해되고 유기된 음악대학 건물에서는 아이 귀신이 나온다는 괴담이 전해지고 있다. 범행 장소를 음악대학 건물로 택한 이유는 피해자가 지르는 비명소리를 악기소리로 가리기 위해서였다.
당시 어떤 기자 중 한 명은 자신의 아내가 숙대 출신이어서, 아내가 "범인은 숙대생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덕분에 "범인이 숙대생"이라는 오보가 빗발치는 가운데서 올바른 정보를 기사에 쓸 수 있었다는 뒷이야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