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기사범인?송혜희(1982)실종사건,전옥분(1961)평택버스정류장실종살인사건
버스하차 귀가 여성을 상대로 한 연쇄 납치 살인사건으로 보는것이 정설이다.
전옥분은 사체로 발견되었으나
송혜희는 시신을 발견하지 못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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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막차 타는것을 친구들이 배웅했다. 버스타는것은 확실하고 버스기사도 군내버스다 보니, 송혜희에 대해 잘 아나, 또다른 승객은 30대 모자눌러쓴 사람은 모르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실종일은 설날 3일전이었고 30대 남은 등산화를 착용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생각건대, 범인은 버스기사라고 생각한다. 버스기사가 구체적으로 범인을 진술했다고는 하지만, 평소에 많은 학생들과 부녀자들을 군내버스로 운행해 왔던 기사가 범행을 했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고 할 수 있다.
포인트는 "막차버스"라는 점에 키포인트가 있다.
가장 버스기사로서는 편안한 시간이기때문이다. 회사의 직원들은 모두 퇴근하고 없을 것이고(경비정도는 있겠지), 자신의 퇴근은 자율에 맡겨져있고 버스기사는 차만 가져다 놓고 퇴근하면 되는 시간이다.
일단 당시에 버스안에 30대남성이 탓다는 것 자체에 대해 경찰은 검증을 한바가 없다.
오직, 마지막 목격자인 버스기사의 진술에 의존하고 있을 뿐이고 단한번도 버스기사를 의심한바가 없다는 점이다.
범죄의 때를 기다려온 버스기사의 머리속은 항상 시나리오로 가득찻기 때문에 범인에 대한 행동묘사, 하차후 행동묘사도 일사천리로 할 수 있었다. 지하도로 갔다는 말도, 평소 자기 머리속에서 꾸며온 시나리오였을 수 있다.
시골출신내기들은 충분히 실종상황을 예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가로등도 없는 칠흙같은 시내 버스에 막차버스,마지막 버스를 운전하는 버스기사는, 지금처럼 버스 배차시간을 지켜야할 의무도 없다.
아래 사진은 송혜희 사건이 아니고 같은 정류장에서 실종되어 시신으로 발견된 전옥분실종살인사건이다.
같은 정류장에서 3년인터벌로 실종사건이 발생한다는것은 쉽지 않다.
연쇄동일범 사건이라면 전옥분의 시신이 유기된 근방에 송혜희의 시신도 유기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동일범이라면 일종의 상징성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바로 종점에 도착해 버스 주차해놓고 퇴근하면 되기 때문에, 뒤따라 오는 다음 버스도 없다. 그런데, 송혜희가 버스에 혼자타고 목적지까지 송혜희만 탑승한 것이라면, 송혜희가 하차할때 젊은 버스기사는 돌변했을 가능성이 크다.
송혜희는 버스에서 강간당한후 평소에 이 도로를 수천번 왕복한 지리를 잘 아는 버스기사에 의해 아무도 찾기 힘든 장소에 유기했을 가능성이 있다.
경찰은 해당 버스기사가 범인이라는 의심을 단 한번도 한적이 없는것 같다. 그의 진술에 의존하고 있다. 그는 이미 어떻게 진술할 것인지를 버스운전을 하면서 수차례 구상해 놓은 바. . . .
따라서 경찰은 쓸데없는 수사보다는 해당 버스정류장 하차장 맞은편인 구릉지 산을 수색해 보는것이 좋을 것이고 송혜희 아버지도 살아있다는 희망보다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접근을 해보는게 좋을 것이다.
즉, 버스정류장 뒷편 산속을 1미터간격으로 살펴보는것이 더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 할수 있다.
무슨 실종사건 일어났다고 하면, 경찰경력 수백명 동원했다고 난리 부르스 펴지만, 대부분, 하기싫은 애야하는 의무병역자들이라 건성건성이라 수색하나마나 보여주기인 경우가 대부분이기때문에, 개구리 소년 같은 황당한 수색질을 하게 되는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버스기사가 범인이라고 생각하지만, 버스기사의 진술이 사실이라면, 술취한 남성이 벌일수 있는 선택지는 단순하다. 고난도 범행계획을 하지않고 단순 강간,시신유기 정도일것이다.
개구리 소년들도 구릉지 경사진곳에 뭍고 나뭇잎,나무가지로 덮어놓으니 바로 눈앞에 두고도 찾지못한것과 마찬가지다.
2. 송혜희와 30대남은 같은 정거장에서 하차했는데, 송혜희는 지하차도 위를, 남성은 지하차도쪽으로 이동하는것을 버스기사가 목격했으며, 문제는, 지하도쪽을 지나면 다시 송혜희와 합류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후 행방불명되었다.
3. 경찰은 단순가출로 실종신고를 접수하고, "3일이 지난후에야" 송혜희찾기에 돌입하였으며, 이는 모든 증거들이 사라진 후라는 점에서 적극적이지 못한 당시 수사실태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4. 막차버스에는 버스기사, 30대남자, 송혜희 이렇게 3명만 탑승했다고 한다.
5. 사건개요
1999년 2월 13일 밤 10시경 경기도 평택시 도일동 하리마을에서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던 송혜희양이 실종되었다.
송 양은 친구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 시내버스를 타고 버스정류장에서 내린 뒤 그대로 행방불명되었다.
당일 송 양은 3학년 반 편성이 있어서 오전에 학교에 갔다가 하교 후 오후 5시 30분경 남자 친구를 만나러 남친 집이 있는 송탄동 서정리에 갔다.
정신없이 남친 집에서 친구들과 놀다보니 이윽고 밤 10시가 되었고, 막차 시간이 되자 송 양은 막차를 타고 집에 갔다.
막차를 타고 가는 모습을 친구들이 배웅했으며, 남친이 살던 송탄동과 송 양의 집이 있던 도일동은 불과 5km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그래서 버스를 타고 갈 경우 10~20분 거리에 불과했지만, 도일동 하리 지역이 원래 주민이 적은 지역이었고, 막차 시간이라 당시 버스 안에는 송 양과 30대로 보이는 남자 한 명만 있었다.
해당 버스 하차장 주변에는 연달아서 3건의 실종 살해 사건이 발생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전옥분실종은 같은 버스정류장이었으며 송혜희 실종사건후 3년후 발생했다는 점에서 시간적 인터벌이 있다.
당시 막차를 운행하던 버스 기사는 밤 10시 15분경 송 양이 도일동 하리 입구 도일주유소 앞에서 내리는 것을 기억했다. 좀 신경이 쓰였던 점은 술 냄새가 나는 이 남자가 송 양과 같이 내렸다고 말했다.
당시 송 양이 내린 버스 정류장은 집에서 약 1km 정도 떨어져 있는 곳이었고, 야간이었다.
거기다 집으로 가는 길은 논밭, 야산뿐인 어두운 골목길이라 항상 우범지대였다.
송 양은 앞에서 걸어가고, 남자는 송 양의 조금 뒤따라 같이 걸어갔다. 이것이 송 양의 마지막 모습이었고, 그 후로 송 양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송 양이 집에 돌아오지 않자, 밤 11시경 아버지는 송 양의 친구들에게 전화했지만, 버스타고 집에 갔다는 말 뿐이었다.
마침내 다음 날 새벽 6시경 가족은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경찰은 단순 가출로 처리했다가 사건 발생 3일 후에야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송 양이 일대 탐문조사, 우범자 조사 등을 통해 단서를 잡으려고 했으나 별 성과가 없었다.
송 양이 버스에서 내릴 때 같이 내렸다는 남자가 사건과 관련된 용의자 또는 최후의 목격자일 수도 있다는 가정하에 그 남자를 찾기 위해 버스 기사를 불러 조사했다.
이 때 버스 기사는 그 남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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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정도 되는 남자였다.
오리털 파카에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었으며, 등산화를 신고 있었다. 하지만 얼굴은 확인하지 못했다.
평택 시내에서 버스를 탔다.
이 동네사람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에 '어디를 가느냐'고 물었더니 '도일동 하리부락' 이라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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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서 술냄새가 났다.
버스에서 내린 후 도로를 건너지 않고 지하도로 향했다
마지막 진술에서 주목할 점이 있는데, 송 양은 버스에서 내린 후 도로를 건너 하리 마을로 향했지만, 남자는 지하도로 들어갔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도로를 건너든, 지하도로 들어가든 하리 마을 방향인건 마찬가지이다.
경찰은 이 남자를 찾기 위해 주변 마을까지 샅샅이 찾고 일대 성매매 업소까지 수색했으나, 끝내 남자를 찾을 수 없었고, 송 양도 찾지 못했다.
만약 당시 버스에 CCTV가 있었으면 희망이 있었겠지만, 당시에는 버스에 CCTV가 없었다. (주. 그래서 버스기사가 가장 강력한 혐의자라고 생각한다.)
당시 송 양이 내린 버스 정류장에서 집으로 가는 길목은 한밤중인데다 인적도 드물고, 가로등이 없어 어두운 좁은 골목길이었다.
따라서 경찰은 인원을 투입해 논밭, 갈대숲, 하수구, 산 등 인근을 샅샅이 수색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송양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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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에 진전이 없자, 경찰은 때마침 사건발생일이 설날 사흘 전이었다는 사실에서 착안해 설을 보내기 위해 귀성한 전입자일 수 있다는 것에 가능성을 두고 도일동 일대, 평택 일대를 샅샅이 조사했으나 별다른 단서를 찾을 수는 없었다.
2004년 경찰은 수사에 별 진전이 없자 송 양이 스스로 잠적했을 가능성이 무게를 뒀다. 가족은 그럴 리가 없다고 극구 부인했으나, 경찰은 여기에 희망을 걸었다.
2004년 2월, 부산광역시에서 송 양의 명의로 인터넷에 접속한 것을 포착한 경찰은 급히 부산으로 내려가 잠복수사를 했다.
다시 접속 흔적이 나타나자 경찰은 해당 피시방을 급습해 확인했다. 그러나 접속자는 송 양이 아니고 엉뚱하게도 어느 젊은 남녀커플이었다.
조사 결과 이들은 송 양의 아버지가 딸을 찾기 위해 붙여둔 전단지에 있던 송양의 주민등록번호 등 신상정보를 도용해 접속한 것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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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에 계속 진전이 없으면서 경찰은 수사를 잠정 중단했으며, 납치 사건이었던 이 사건은 결국 2014년 2월 공소시효가 만료되었다.
송 양의 아버지는 도일동에서 아내와 두 명의 딸과 함께 살고 있던 평범한 자영업자였다.
특히 차녀 송 양은 학교에서 전교 1~2등을 다툴 정도로 영특한 아이었고, 국회의원으로부터 장학금을 받기도 했던 아버지의 유일한 자랑거리였다. 무엇보다 송 양은 밝고 성실한 성격으로 주변에서 인기도 많았다.
송 양의 실종 후 부모님은 생업을 포기하고 송 양을 찾아나섰다.
그러나 어머니는 딸을 찾지 못한 절망감에 우울증과 알코올 의존증으로 괴로워하다
결국 농약 자살을 택하고 말았다.
송 양의 언니는 결혼 후 자식을 낳아 아버지를 모시며 살고 있지만, 송 양의 아버지는 딸의 방을 예전 그대로 보존해놓고 집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또한 트럭을 송 양의 사진으로 도배하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20년 넘게 딸을 찾아 다니고 있다.
그동안 송 양의 아버지는 딸을 봤다는 제보를 받으면 전국 어디든 찾아갔으나, 수백 번 모두 송양과 비슷한 사람이거나 장난전화, 허위제보였다.
그래도 송 양의 아버지는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전단지와 현수막을 거는 등 개인적으로 조사를 계속했다. 하지만 생업을 그만두고 많은 양의 전단지와 현수막을 배부하느라 상당한 금액의 빚이 쌓여 신용불량자가 되고 말았다.
현재 송 양의 고등학교와 집 일대는 개발이 이루어져 당시 모습과 상당히 달라졌으며, 송 양의 집도 개발 지역에 포함되어 곧 이주해야 할 운명에 놓였다.
송 양의 사연은 그 후 2004년 KBS 공개수사 실종과 2011년 채널뷰 사라진 가족에도 나왔지만, 지금껏 별 진전이 없다. 2019년 현재도 송 양의 행방은 알 수 없으며, 안타깝게도 송 양의 아버지는 지금도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현수막을 걸어 딸을 찾고 있다.
2013년까지만 해도 평택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 송 양의 사진을 걸은 실종된 송혜희좀 찾아 주세요!!!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볼수 있었는데, 2014년 들어 많이 없어진 듯 하다.
하지만 2017년에도 평택 일대에서 현수막을 볼 수 있다. 또한 여전히 서울 시내 주요부에서도 여전히 이 현수막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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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서울 및 수도권 지역에서 송혜희 양을 찾는 현수막이 걸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010 번호통합 정책에 반대하는 주요 사례로 송 양의 아버지가 자주 오르내리곤 한다.
실종된 딸이 전화를 걸어올까 봐 016 번호를 바꾸지 못한다는 것이 주된 이유이다.
2015년 5월 7일, 조선일보가 송혜희 양의 아버지와 인터뷰를 했다.
그는 시간이 흘러 60세가 넘었지만, 14년간 실종된 딸을 찾기 위해 사용한 차를 폐차한 뒤, 새로 산 차의 주행거리가 20만km에 달한다고 한다. 또한 4년 전 현수막을 교체하던 중 사다리에서 떨어져 허리를 크게 다쳤다고 한다.
평택시의 지원으로 수술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기초생활수급 60만원 중 40만원을 현수막 및 전단지 제작에 쓰는 등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3년후 발생한 전옥분(1961)실종 살인사건 개요 (2002년)
전옥분은 2002년 9월 저녁 평택역에서 버스를 타고 자신이 사는 마을입구 정류장에 내린 후 실종됐다가 5개월 뒤 자택 인근 한 논에서 백골로 발견됐다. 정황상 타살이 유력하지만 현재까지 범인이 잡히지 않아 미제사건으로 남아있다.
2002년 9월 26일 저녁 8시20분께 남편은 집 앞 버스정류장에서 전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 기다리고 있을 정도인데도 실종이 되었다는 특징이 있다.)
조카 집들이를 다녀온 전씨가 30분 전 평택역에서 집으로 향하는 버스 시간표를 물었기 때문이다. 하필이면 전씨가 휴대전화를 집에 놓고 간 탓에 A씨는 정류장에서 그를 기다려야 했다.
그러던 중 남편은 정류장을 지나는 주민을 만났고, 전씨가 알아서 집으로 돌아올 것으로 생각한 그는 주민을 데려다준 뒤 자신도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전씨는 집에 없었다.
이 사건이 미제로 남게 된 데는 당시 경찰의 안이한 대처 탓이 크다. 남편은 전옥분(1961)이 실종된 다음날 아침 곧바로 평택경찰서를 찾았다.
하지만 경찰관은 A씨에게 "집 나간 아줌마는 3일이면 들어온다"며 단순 실종 사건으로 기록했다. 이후 전씨의 시신이 발견되자 그제서야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A씨는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이 피해자 유류품에 있던 DNA분석을 통해 밝혀지자 전씨의 유류품에도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경찰이 보관하고 있을 줄 알았던 유류품은 사라진 뒤였다.
A씨는 전씨의 유류품을 받은 적이 없지만 당시 수사관은 전씨의 장례를 치르며 유가족에게 유류품을 전달하고 서명까지 받았다고 주장했다. 재수사에 착수한 경찰이 평택경찰서 증거보관실을 모두 뒤졌지만 전씨의 흔적은 없었다.
그렇다. 경찰을 믿으면 안된다.
교훈
송혜희 아버지는 당시 버스 운전기사를 찾아가던지, 버스 정류장 하차한후 하리마을 방향 야산일대를 시간내서 수색해 보는것이 전국을 순회하며 현수막 거는것보다 실리적이라 할수 있다. 이미 송혜희는 사망한것으로 추정이 되며, 동종사건의 피해사례와 시신발견사례를 볼때 인근 야산에 유기되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것은 단순한 부정으로 해결하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흘렀으며, 실질적인 방법을 강구할 때가 되었다. 현재 송혜희 아버지는 7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에, 죽었다는 점에 방점을 찍고, 도일주유소 주변의 야산을 경찰에 맡기지 말고 자신이 직접 수색해 보아야 한다.
개구리 소년 사건처럼 경찰,병력들,경력들은 그날 하루 근무떼우기 위해 수색하기 때문에 성의도 없고, 목적의식도 없다. 면밀하게 도일주유소 바로 앞 야산을 수색해 보길 바란다.
경찰을 믿을 필요가 없고 이용하는 정도에 머물러야 한다.
전옥분은 버스 트렁크에 실려있다가 논에 버려졌을 가능성도 있다. 버스기사가 계속 화성시내를 돌아다니고 있다.